솔직히 저는 파스타 면을 기름에 튀긴다는 발상을 처음 들었을 때 그냥 흘려들었습니다. "면을 튀기면 딱딱해서 국물이랑 겉돌겠지"라고 단정해버린 거죠. 그런데 막상 뜨거운 기름 속에서 거품이 자잘하게 가라앉을 때까지 튀겨낸 면을 끓는 육수에 넣었을 때, 입안에 들어온 식감은 제 예상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이탈리안도 아니고 짬뽕도 아닌, 20년 전 하루 천만 원 매출을 찍은 시그니처 메뉴의 정체가 바로 이 토마토 짬뽕 파스타입니다. 치오피노와 짬뽕 사이, 이 요리의 정체이 요리를 처음 마주했을 때 저도 장르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국물이 넉넉하고 해산물이 잔뜩 들어가 있는데, 분명히 중식 짬뽕과는 다른 결이었거든요.여기서 치오피노(Cioppino)를 잠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치오피..
솔직히 저는 도토리묵을 그냥 썰어서 육수만 부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첫 번째 묵사발을 만들던 날 뚝뚝 끊어지는 묵을 보고서야 깨달았습니다. 냉장 보관된 도토리묵에는 반드시 손질 단계가 필요합니다. 그 한 가지를 알고 나서부터 제 여름 밥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묵 데치기 — 탱글탱글함의 시작처음 묵사발을 만들던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마트에서 사 온 도토리묵을 냉장고에서 꺼내 그대로 썰었더니, 젓가락으로 집는 순간 뚝뚝 부러지고 겉은 미끌거리는데 속은 퍼석퍼석한 상태였습니다. 그때 제가 몰랐던 것은 바로 냉장 보관 과정에서 일어나는 노화 현상이었습니다.식품 과학에서는 이를 전분 노화(retrogradation)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전분 노화란, 가열 조리 후 겔(g..
차돌박이 된장찌개의 맛을 가르는 건 재료가 아니라 순서입니다. 고기를 먼저 볶아 지방을 충분히 녹여내는 것, 그 기름에 된장을 볶는 것, 이 두 단계가 고깃집 국물과 집밥 국물을 가르는 분기점입니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가족이 다 모인 자리에서 직접 끓여보고 확인했습니다. 예상보다 결과가 훨씬 좋았고, 동시에 육수 비율에서 한 가지 짚고 싶은 부분도 생겼습니다. 고깃집 된장찌개의 본질, 고기 기름 볶음된장찌개에 차돌박이를 넣는 집은 많아도, 차돌박이를 먼저 볶아 기름을 충분히 낸 다음 그 기름으로 된장을 볶는 집은 드뭅니다. 이 차이가 생각보다 큽니다.차돌박이는 소의 복부 바깥쪽에 붙은 부위로, 얇게 썬 형태에서도 지방 함량이 상당히 높습니다. 중불에서 천천히 볶으면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