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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파스타 면을 기름에 튀긴다는 발상을 처음 들었을 때 그냥 흘려들었습니다. "면을 튀기면 딱딱해서 국물이랑 겉돌겠지"라고 단정해버린 거죠. 그런데 막상 뜨거운 기름 속에서 거품이 자잘하게 가라앉을 때까지 튀겨낸 면을 끓는 육수에 넣었을 때, 입안에 들어온 식감은 제 예상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이탈리안도 아니고 짬뽕도 아닌, 20년 전 하루 천만 원 매출을 찍은 시그니처 메뉴의 정체가 바로 이 토마토 짬뽕 파스타입니다.

치오피노와 짬뽕 사이, 이 요리의 정체
이 요리를 처음 마주했을 때 저도 장르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국물이 넉넉하고 해산물이 잔뜩 들어가 있는데, 분명히 중식 짬뽕과는 다른 결이었거든요.
여기서 치오피노(Cioppino)를 잠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치오피노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만들어낸 해산물 토마토 스튜로, 각종 조개류와 새우, 게 등을 토마토 베이스 국물에 넣고 끓인 요리입니다. 쉽게 말해 이탈리안 스타일의 얼큰한 해물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요리는 바로 그 치오피노의 국물 구조 위에 짬뽕의 볶음 향과 두반장의 깊이를 얹은 형태입니다.
처음 한 입 먹는 순간 "이거 짬뽕이네"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토마토의 산미와 해산물 육수가 뒤따라오면 "아, 이건 또 다른 요리구나" 하고 혼란스러워집니다. 그 혼란이 오히려 매력입니다. 낯선데 친근하고, 새로운데 편안한 이 아이러니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요리를 잊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국물 맛을 결정하는 마늘 손질과 두반장 볶음
이 요리의 국물이 왜 그렇게 깔끔하면서도 깊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 경험상 그 비밀은 마늘 손질 방식에 있습니다. 다진 마늘을 쓰면 국물이 텁텁하고 흐려집니다. 잘게 썰린 마늘이 육수 전체에 풀려나오기 때문인데요. 반면 마늘을 칼 옆면으로 살짝 부숴서 통으로 넣으면 향만 올라오고 건더기는 건져낼 수 있어서 국물이 맑게 유지됩니다.
여기에 마늘 오일을 따로 만들어 볶음에 사용하면 마늘 향이 이중으로 입혀집니다. 마늘 오일이란 올리브유나 식용유에 마늘을 저온에서 천천히 가열해 향을 완전히 끌어낸 기름을 말합니다. 이 오일로 대파와 부순 마늘을 다시 볶으면 향의 층위가 두꺼워지는 효과가 납니다.
두반장 볶음도 중요한 지점입니다. 두반장이란 중국 쓰촨 지방에서 유래한 발효 고추 콩 페이스트로, 매운맛과 발효 감칠맛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이걸 진간장을 살짝 눌려 불맛을 낸 채소 위에 올려 한 번 더 볶아주면, 고춧가루와 결합해 토마토소스가 들어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복합적인 맛의 바닥이 만들어집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이 순서를 뒤바꾸면 국물의 깊이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 마늘은 다지지 말고 칼 옆면으로 살짝 부숴서 사용 → 국물이 깔끔해짐
- 마늘 오일을 따로 만들어 볶음에 활용 → 마늘 향이 이중으로 입혀짐
- 진간장으로 불맛을 낸 뒤 두반장 투입 → 발효 감칠맛과 매운맛의 층위 형성
- 채소에서 나온 수분으로 고춧가루를 볶아 향을 끌어올린 뒤 육수 투입
튀긴 면이 만들어내는 전혀 다른 식감
솔직히 저는 이 부분을 처음 배웠을 때 속으로 "왜 이 짓을 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삶아놓은 스파게티 면을 뜨거운 기름에 다시 넣어 튀긴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잘 안 됐거든요. 그런데 그 튀겨진 면이 끓는 국물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면을 튀기면 표면이 급격히 건조해지면서 밀도가 높아집니다. 이 상태를 면 콩피(Confit)라고 부르는 분들도 있는데, 정확히는 콩피와는 다릅니다. 콩피란 재료를 저온의 기름 속에 오랜 시간 담가 익히는 조리법을 말하는 반면, 이 방식은 고온에서 짧게 튀겨 수분을 빼는 것이 목적입니다. 거품이 바글바글 크게 올라오다가 자잘하게 줄어드는 시점, 대략 1분 안팎이 면을 건져내야 하는 타이밍입니다.
이렇게 튀긴 면은 마치 불량식품처럼 쫀득하고 꼬들꼬들한 상태가 됩니다. 이 면이 끓는 육수 속에서 수분을 천천히 흡수하면서 겉은 부드럽고 속은 여전히 탄력 있는 독특한 식감으로 변합니다. 리조또에서 밥알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느낌이라고 표현하면 가장 가깝겠습니다. 제 경험상 이 식감은 어떤 일반적인 파스타 조리법으로도 재현이 안 됩니다. 그리고 이 식감이 바로 손님들이 국물까지 남기지 않았던 이유라고 확신합니다.
라면의 경우 공장에서 기름에 튀겨 건조하기 때문에 봉지를 뜯었을 때 그 특유의 탱글한 면발이 나온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식품안전나라). 이 요리는 바로 그 원리를 생면에 직접 적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청경채와 미원 한 꼬집, 마지막 밸런스
두반장, 고춧가루, 꽃게 육수, 토마토소스가 한데 모이면 자칫 국물이 무겁고 텁텁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직접 만들어보면서 처음 몇 번은 국물 뒷맛이 묵직하게 가라앉는 문제를 겪었습니다. 그 때마다 뭔가 하나가 빠진 느낌이었는데, 답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청경채를 마지막에 투입하는 것이 그 균형을 잡아줍니다. 청경채는 수분 함량이 높고 특유의 풋내가 기름진 국물 위에 청량감을 더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청경채 대신 미나리를 쓰면 비슷한 효과를 내면서 더 한국적인 향을 추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청경채의 중식 느낌이 이 요리의 정체성과 더 잘 맞는다고 봅니다. 미나리도 좋은 선택이지만, 향이 강해서 짬뽕의 느낌이 살짝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더군요.
마지막으로 미원 한 꼬집입니다. 글루타민산나트륨(MSG)이라고도 불리는 미원은 식품 속 감칠맛 성분인 글루타민산을 결정화한 조미료로, 적정량 사용 시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이 현재의 과학적 합의입니다(출처: WHO). 꽃게와 바지락에서 이미 감칠맛이 충분히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원 한 꼬집이 들어가는 순간 국물 전체가 한 단계 더 올라가는 느낌이 납니다. "MSG 쓰는 건 꼼수 아니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적재적소에 쓰는 것이 요리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요리에서만큼은 그 한 꼬집이 없으면 뭔가 허전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파스타 면을 꼭 튀겨야 하나요? 그냥 삶아서 넣으면 안 되나요?
A. 그냥 삶아 넣어도 맛은 납니다만, 이 요리의 핵심 정체성인 꼬들꼬들한 식감은 포기해야 합니다. 면을 튀기는 과정이 번거롭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 해보면 1분 남짓이라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식감 차이가 크기 때문에 가능하면 한 번은 튀긴 버전으로 시도해 보시길 권합니다.
Q. 두반장 대신 고추장 써도 되나요?
A. 두반장과 고추장은 매운맛은 비슷해 보여도 전혀 다른 발효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반장은 콩 발효 특유의 짭짤하고 복합적인 감칠맛이 있는 반면, 고추장은 단맛이 강해 국물 베이스를 달게 만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추장을 쓰면 이 요리의 짬뽕과 이탈리안 사이 어딘가에 있는 균형이 한쪽으로 쏠릴 수 있어서, 두반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면 원재료를 지키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Q. 꽃게가 없으면 어떤 해산물로 대체할 수 있나요?
A. 꽃게의 역할은 단맛과 깊은 풍미의 육수를 내는 것입니다. 꽃게가 없다면 홍합이나 새우 껍데기를 미리 볶아 육수를 낸 뒤 사용하면 비슷한 방향의 감칠맛을 낼 수 있습니다. 조개류를 여럿 섞을수록 복합적인 맛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도 바지락과 홍합을 함께 쓴 버전으로 만들어봤고 충분히 맛있었습니다.
Q. 토마토소스가 들어가면 맛이 이탈리안 파스타처럼 되는 거 아닌가요?
A. 이게 이 요리에서 제가 가장 놀랐던 부분입니다. 두반장과 고춧가루를 볶아놓은 국물에 토마토소스가 들어가면, 토마토의 산미가 국물 전체에 녹아들면서 존재감이 사라집니다. "토마토 들어갔다는 상상을 못 한다"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결과물은 이탈리안보다 훨씬 매콤하고 짬뽕에 가까운 느낌이지만, 뒷맛에 묘하게 시원한 산미가 남아 있습니다.
결론
이 요리를 단순히 이탈리안과 중식을 섞은 퓨전 요리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치오피노의 구조, 짬뽕의 볶음 향, 두반장과 토마토소스의 조합, 그리고 튀긴 면이라는 독창적인 식감까지, 모든 요소가 각각의 역할을 갖고 맞물려 있습니다. 어느 하나를 빼도 이 요리가 아니게 됩니다.
쌀쌀한 날씨에 뜨끈한 국물이 당기신다면, 한 번쯤 도전해 보시길 권합니다. 튀긴 면이 부담스럽다면 그냥 삶아서 넣어도 괜찮지만, 꼭 한 번은 원래 방식대로 만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면 식감이 달라지는 그 순간을 직접 경험해 보셔야 이 요리가 왜 20년 전 그 매장의 시그니처가 될 수 있었는지 납득이 가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