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볶음밥이면 뭐든 비슷하겠지 싶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거든요. 그런데 나시고랭을 직접 만들어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삼발 소스 하나를 제대로 내는 데 김치볶음밥 두 번 만들 시간이 걸린다는 걸요. 식당을 운영하면서 손님 한 분의 요청으로 시작한 이 메뉴가, 지금은 저희 가게에서 가장 많이 나가는 메뉴가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솔직하게 정리해봤습니다.

나시고랭의 정체성, 트라시와 케찹 마니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나시고랭 깜빙을 처음 먹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나시고랭 깜빙이란 염소 고기를 넣은 볶음밥으로, 중동 요리의 영향을 받은 인도네시아 변형 메뉴입니다. 꽤 유명한 곳에서 포장해 호텔 방에서 먹었는데, 맛은 분명히 있었지만 볶음밥 안에 섞인 염소 간이 너무 낯설어서 온전히 즐기지 못했습니다. 그 경험 때문에 나시고랭을 메뉴로 내는 게 망설여졌던 게 솔직한 이유였습니다.
그럼에도 신메뉴를 개발하면서 제일 먼저 공부한 건 나시고랭을 나시고랭답게 만드는 핵심 재료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트라시와 케찹 마니스 없이는 나시고랭이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트라시(Terasi)는 인도네시아식 새우 페이스트로, 새우를 발효시켜 만든 조미료입니다. 쉽게 말해 동남아시아판 새우젓 농축액이라고 보면 됩니다. 처음 포장을 뜯었을 때 올라오는 냄새는 솔직히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그 쿰쿰한 냄새가 볶는 순간 감칠맛으로 완전히 바뀌는 게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트라시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 경우엔 태국식 새우 페이스트인 카피(Kapi)로 대체했는데, 카피는 트라시보다 질감이 부드럽고 색이 연한 편이지만 볶음 요리에서 내는 감칠맛은 충분히 비슷합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자료에 따르면 동남아 발효 식재료 수입량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며, 이에 따라 국내 아시안 마트에서도 관련 식재료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출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케찹 마니스(Kecap Manis)는 콩으로 만든 인도네시아식 달콤한 간장으로, 당밀을 첨가해 진하고 묵직한 단맛이 특징입니다. 우리가 아는 간장처럼 짜지 않고, 오히려 조청에 가까운 점도와 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케찹 마니스가 볶음밥에 들어가면 캐러멜라이징, 즉 고온에서 당이 갈변하며 불맛과 깊은 색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반응이 일어납니다. 단맛이 볶음밥에 잘 어울릴지 확신이 없었는데, 제 경험상 다른 재료들과 만나면 오히려 풍미를 훨씬 끌어올려줬습니다.
- 트라시(Terasi): 인도네시아식 발효 새우 페이스트. 국내 미구매 시 태국산 카피(Kapi)로 대체 가능
- 케찹 마니스(Kecap Manis): 당밀을 넣은 달콤한 인도네시아식 간장. 볶음밥 캐러멜라이징에 핵심 역할
- 삼발 소스(Sambal): 고추, 샬롯, 마늘, 토마토, 새우 페이스트를 갈아 볶아낸 기본 양념장
- 찬밥: 수분이 빠진 하룻밤 지난 밥이 볶음밥 식감을 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
삼발 소스부터 완성까지, 실제 조리 순서
나시고랭을 처음 만들어볼 때 가장 놀랐던 건 조리 순서였습니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는 냉장고에 남은 찬밥과 항상 구비해두는 삼발 소스로 뚝딱 만들어낸다고 하는데, 저처럼 삼발 소스를 그때그때 직접 만들어야 하는 환경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삼발 소스(Sambal)란 고추, 마늘, 샬롯, 토마토, 새우 페이스트를 갈아 볶아낸 인도네시아의 기본 양념장으로, 우리 식으로 치면 고추장 베이스 양념 격입니다. 이 삼발 소스를 충분히 볶아 수분을 날리는 것이 전체 레시피에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단계입니다.
실제 조리 순서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믹서기에 샬롯, 마늘, 고추, 토마토 4분의 1, 트라시(또는 카피), 설탕을 넣고 곱게 갈아 삼발 베이스를 만듭니다. 팬에 식용유를 넉넉히 두르고 이 삼발 소스를 중불에서 천천히 볶아줍니다. 처음엔 수분이 많고 색이 연하지만, 수분이 날아가면서 기름이 분리되고 윤기가 나기 시작하면 볶음밥에 바로 쓸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생략하고 싶은 유혹이 컸는데, 제가 직접 비교해보니 삼발을 충분히 볶지 않으면 날것 느낌과 쓴맛이 남아서 결국 시간이 걸려도 끝까지 볶아내는 것이 맞았습니다.
삼발 소스가 완성되면 쪽파의 흰 부분을 함께 볶아 향을 올린 뒤, 닭고기를 먼저 넣어줍니다. 닭고기는 새우보다 익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먼저 투입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간장을 조금 추가하고, 닭고기가 70% 정도 익으면 하룻밤 지난 찬밥, 잘게 썬 당근, 새우를 한꺼번에 넣습니다. 이후 케찹 마니스를 밥알이 먹음직스러운 갈색이 될 때까지 넣어가며 볶는데, 저는 계량보다 눈으로 보는 색감을 기준으로 합니다. 볶음밥에서 올라오는 고소한 냄새가 정점에 달했다 싶을 때가 바로 불을 끄는 타이밍입니다.
완성된 나시고랭은 오이 슬라이스, 토마토, 쪽파를 고명으로 올려 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조리 위생 기준에 따르면 가금류인 닭고기는 중심 온도 75°C 이상에서 완전히 익혀야 하므로, 볶음 중에도 익힘 정도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레스토랑에서 내는 나시고랭이 이토록 섬세한 온도와 타이밍의 결과물이라는 걸, 직접 만들어보기 전에는 몰랐거든요.
자주 묻는 질문
Q. 트라시를 꼭 써야 하나요? 없으면 그냥 생략해도 되나요?
A. 생략하면 맛이 확실히 밋밋해집니다. 트라시가 없다면 태국산 카피로 대체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카피는 국내 아시안 마트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고, 볶았을 때 내는 감칠맛이 트라시와 꽤 비슷합니다. 처음 냄새에 놀라도 볶으면 사라지니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됩니다.
Q. 케찹 마니스를 일반 간장으로 바꿔도 되나요?
A. 대체는 가능하지만 나시고랭 특유의 캐러멜라이징 색감과 단맛이 빠지게 됩니다. 케찹 마니스 대신 간장+흑설탕을 3:1 비율로 섞어 쓰면 어느 정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다만 정확히 같은 맛은 아니므로, 제 경우엔 케찹 마니스를 아시안 마트에서 미리 구비해두고 씁니다.
Q. 삼발 소스를 미리 만들어 보관해도 되나요?
A. 됩니다. 오히려 미리 만들어두면 훨씬 편합니다. 완성된 삼발 소스는 밀폐 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 시 5~7일, 냉동 시 한 달 정도 사용 가능합니다. 인도네시아 가정에서도 삼발 소스를 상시 구비해두고 쓴다고 하는데, 이게 나시고랭이 빠른 음식이 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Q. 찬밥이 없으면 갓 지은 밥으로 해도 되나요?
A. 가능하지만 식감이 많이 다릅니다. 갓 지은 밥은 수분이 많아 볶을 때 뭉치기 쉽고, 소스가 고르게 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급할 때는 밥을 넓게 펼쳐 10~15분 정도 식혀 수분을 날린 뒤 사용하면 찬밥에 가까운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결론
나시고랭은 본래 인도네시아 가정에서 남은 찬밥으로 빠르게 해결하는 편의식입니다. 그런데 외식업에서 이 메뉴를 제대로 내려면 삼발 소스를 직접 만들고, 트라시의 발효 향을 다루고, 케찹 마니스의 캐러멜라이징 타이밍을 잡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이 간극이 꽤 컸습니다. 그래도 염소 간처럼 한국인에게 낯선 재료는 걷어내되, 트라시와 케찹 마니스라는 나시고랭의 본질적인 정체성은 지키는 방향으로 개발했더니 지금처럼 가게 대표 메뉴가 될 수 있었습니다.
낯선 향신료라도 제대로 볶아내면 감칠맛으로 바뀐다는 것, 그리고 단맛이 오히려 볶음밥의 풍미를 끌어올린다는 것. 제 경험상 이 두 가지를 믿고 한 번 시도해보시면, 나시고랭이 왜 인도네시아에서 국민 음식인지 이해하게 될 겁니다. 재료 구비가 걱정된다면 아시안 마트 방문이나 온라인 구매부터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